작품 해설
종민
독백, 2020
영상길이 00:17:07
저는 장애인 극단 휠의 배우이자 대표를 맡고 있는 호종민이라고 합니다. 독백 연기를 하는 제 모습이 동영상에 담겨 있습니다. 그것을 보는 제 모습은 다시 독백의 기획의도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제 작품은 제 자화상을 그린 것인데... 거지가 한푼줍쇼 하는 것 같아서 작품 설명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 작품은 Hello 프로젝트 시간에 자화상을 그리기로 했는데, 무엇으로 자화상을 그릴까 생각하다가 제가 그려내고 싶고, 담고 싶은 인물들을 생각해본 것입니다. 막상 떠올려보니, 생각이 잘 나지는 않았습니다. 떠오르는 인물들은 많았는데... 솔로몬, 다윗, 삼손, 모세... 떠오르는 인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인물들은 어딘지 모르게 모자라 보였습니다. 물론, 존경하고 담고 싶은 위인들이었으나 한 가지만 잘난 위인들이랄까, 생각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근데, 이 인물들의 단점을 빼고 이 인물들을 완벽하게 만들어 봤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화상이라면 적어도 완벽한 사람을 그려야 하지 않나? 이 위인들을 한 사람으로 만들면 어떨까? 그래서 지금의 독백 연기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의 자화상으로, 이 네 분의 장점을 다 닮고 싶어서 독백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음성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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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대본
안녕하세요, 저는 장애인 문화예술극회 휠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배우 호종민이라고 합니다.
저는 올해로 배우가 된지 15년이 되었고요
저는 제 직업인 배우가 너무 좋습니다.
무대에 설 때만큼은 장애인 호종민으로 서는 게 아니고 배우 호종민으로 서기 때문입니다.
무대에 설 때만큼은 제 가슴이 쿵쾅쿵쾅 마구마구 뛰거든요.
아, 내가 정말 살아 있구나…
하지만 요즘 같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는 창작자로서, 배우로서, 장애인으로서 발을 딛고 설 한 평의 땅조차 줄어들고 있어서
매우 두렵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막막해집니다. //
그래서 오늘은 제가 평소 존경하는 멘토 네 분을 초청했는데요,
네? 왜 초청했냐고요? 왜 초청했게요?
네, 조언을 듣기 위해... 아 저쪽에 방금 오셨네요.
(옆으로 시선 돌리며)
안녕하세요? 바쁘신 와중에도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요즘같은 코로나팬데믹 상황에서는 극단을 운영하기가 힘이 듭니다.
다른 장애인 극단도 운영하기가 힘들다고 많이 들었어요.
근데 제 머리 속에 갑자기 사막에서 수천 명을 데리고 여행을 하신 모세님이 딱 떠오르는 거예요.
근데 그 긴 시간 동안 그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실 수 있었던 비결이 뭐예요?
가르쳐주세요. 궁금해요.
비결이라...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면 먼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세요.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진심어린 노력을 하세요.
신이 선택하신 저라고 해도
아무것도 없는 저를 누가 처음부터 따르겠어요.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어요.
사람들이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내 진심어린 노력을 받아 주었고,
사람들이 나를 리더로서 인정해 주었죠.
결국 리더십은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사람들로부터 얻어지는 거예요.
그게 비결이면 비결이죠.
듣고, 공감하고, 진심으로 노력하라...해볼께요.
그런데 노력만 가지고 안 되는 일이 있잖아요.
막다른 골목에 선 것처럼 막막한 기분.
그럴 때는 삶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데 대체 어떻게 하면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솔로몬 왕께서는 태어나실 때부터
영리하고 지혜로우셨으니,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지혜를 타고 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이 아둔한 녀석아.
자, 지금부터 딱 한번만 들려줄 거니까 잘 들어라.
나는 평생을 지혜를 얻기 위해 반성하고 기도하고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내 영혼 깊숙이 숨어있는 게으름, 나태, 오만, 그리고 온갖 유혹들과 치열하게 싸워 얻어낸 결과이다.
야, 왕이 얼마나 피곤하고 빡센 자리인지 알아
나의 지혜는 바로 그 치열한 싸움의 결과이고 그게 지금의 나다.
오해했네요. 고정하세요.
솔로몬 왕께서도 지혜를 얻기 위해 노력을 하셨다는데,
전 몇 배로 더 노력해야겠어요.
그런데 살다보면 불쑥 사는게 무서워지고,
아무것도 못할 것만 같은 날이 있잖아요.
그럴 때 사람들은 힘을 내라, 용기를 내라고 하는데,
그 말이 참 듣기 싫을 때가 있어요.
아니, 없는 용기를 어떻게 내.
종민이 형. 있잖아요, 사람들이 나보고 용감한 다윗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무서움도 많고 두려운 것도 많아요.
사실 나 여기 오기전에 청심환 먹고 왔어요.
남 앞에서 말하는게 돌팔매질 보다 어려워요.
나 같은 겁쟁이가 골리앗과 같은 거인과 어떻게 싸웠냐고요?
용기라는 건요 두려움과 마주봤을 때 비로소 생겨나는 것 같아요.
피할 수 없었고, 피하지 않았으니까요.
형이 우리들과 마주보고 있는 바로 지금처럼요.
그러니까 나는 이미 용기가 있다는 뜻?....
아직은 모르겠지만, 위로가 되네요.
아... 사람 맘이란게 참 간사한게,
이런 말을 들으니 내가 삼손처럼 천하무적의 힘을 가졌더라면
내가 꿈에 그리던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네요.
천하무적? 나처럼? 눈이 있으면 나를 똑똑히 봐라.
그래, 난 한 때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잃었다.
난 오만했고, 거만했고, 온갖 유혹에 굴복했고,
내 힘의 원천인 내 머리칼은 모두 잘려 나갔다. 내 두 눈과 함께.
내 힘은 결국 나를 망가뜨렸지.
가장 초라하고 힘없는 나는 지금 처음으로 신을 느낀다.
혈관 구석구석을 따라 신의 힘이 타고 흐른다.
팔과 다리, 두 눈마저 잃어버리고
세상에서 완전히 버려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힘이 세다.
네 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 가지는 확실해졌네요.
치열하게 싸우지 않고서 얻을 수 없다는 거.
오늘 이분들 만나길 정말 다행이에요.
다른 건 몰라도 저 호종민은 노력만큼은 국대급으로 잘할 수 있거든요.
(뭔가 생각난듯)
저 먼저 가봐야겠어요.
저 문 밖에서 어떤 도전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빨리 만나보고 싶어졌거든요. 여러분 다음에 만나면 이야기 해드릴께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맞서 싸웠는지. 기대해 주세요.